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잭슨 파이브 (문단 편집) === 전성기 === 그들은 열심히 여러 지역 탤런트 쇼, 학교 축제, 스트립 쇼, 칵테일 바 등에서 공연을 했고 인디애나 주 게리의 소규모 지역 레코드 사인 스틸 타운에서 최초로 "Big Boy"라는 상업용 싱글을 녹음했다. [[빌보드]]에 의하면 10,000장을 넘게 팔았다고 한다. 물론 여러 방송에서도 송출됐고 가족들은 그것을 들으며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. 이 녹음본은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25년 후 재발견되었고 리마스터하여 재발매 했다. 2014년 롤링 스톤은 시카고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Big Boy를 최초 보도했는데 음질이 굉장히 좋다. [[https://youtu.be/OEcIVoELfNs|유튜브]] 명성을 쌓은 보이 밴드는 마침내 [[1969년]] [[스티비 원더]], [[마빈 게이]], [[다이애나 로스]] 등의 [[대중음악]] 역사에 가장 중요한 아티스트들을 배출했으며 1961년~1971년 사이 무려 110곡을 빌보드 싱글 차트 top 10 안에 진입시킨 '''흑인음악계의 영원한 전설 [[모타운]] 레코드 사와 계약을 체결'''한다. 모타운은 AM 라디오를 잘 활용했고 대중들이 쉬운 노래를 즐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. 모타운의 특징은 'Kiss (keep it simple, stupid)'라고 불리는, 간단하고 세련된 멜로디 구조로 된 후크 송 위주의 곡들이었다.[* 모타운 레코드 시기에 마이클은 사장 [[베리 골디]]를 유심히 관찰했었고, 성인 시절에도 항상 [[베리 골디|베리]]의 원칙을 사용했었다. 마이클은 훗날 인터뷰에서 "베리는 완벽함과 세심함을 요구했었다. 오늘까지 나는 같은 원칙을 사용한다."라고 말했다. 이것은 잭슨의 자율성이 확대된 [[Bad]] 앨범 제작부터 가장 잘 드러난다.] 잭슨 파이브는 모타운이 만들어 낸 최고의 상품으로 1970년에만 무려 '''4곡'''("[[ABC(노래)|ABC]]"[* 2주], "[[The Love You Save]]"[* 2주], "[[I'll Be There(잭슨 파이브)|I'll Be There]]"[* 5주], "[[I Want You Back]]"[* 1주])'''을 연속으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렸다.''' 이는 '''밴드 역사상 최고 기록'''이었다. "[[I Want You Back]]"은 [[피치포크]] 선정 "1970년대 가장 위대한 곡 2위"에도 오를 만큼 여러모로 기념비적 작품으로 200만 장 이상이 팔렸다. 이때 마이클 잭슨은 '''12살의 나이에 빌보드 핫 100 1위를 기록'''한 것이 됐는데 이는 '''최연소 [[빌보드 핫 100]] 1위''' 기록으로, [[기네스 북]]에 등재되었다. 잭슨 파이브가 대성공을 거둔 뒤 모타운에서는 이들을 주요 마케팅 대상으로 선정하여 잭슨 파이브의 "J5" 로고가 포함된 여러 물건을 믹스해서 판매했고 각종 TV 방송이나 잡지에도 열심히 나왔다. [[크리스마스]] 기념으로 발매된 "Jackson 5 Christmas Album"도 상업적 히트는 물론 비평가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. 잭슨 파이브는 당대 최고의 밴드였던 '비틀즈'에 빗대어 '''흑인 비틀즈'''로 불릴 정도로 10대 [[미국 흑인|흑인]]들의 우상이 되었고, 그중에서도 메인 보컬이었던 마이클 잭슨은 특히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. 마이클은 [[롤링 스톤]] 잡지의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었다. 이런 흑인 형제그룹의 부상을 의식하여 '더 오스몬즈(The Osmonds: 오스몬드 가족)'라는 백인 형제들로 구성된 짝퉁 보이그룹이 나오기도 했다.[* 사실은 잭슨 파이브보다도 공연 활동 경력은 길었지만 소규모 공연 위주라 매스미디어 노출이 적었던 형제들을(참고로 그들의 부모는 [[몰몬교]] 신자다.) 백인 자본가들이 잭슨 파이브의 컨셉을 베낀 백인 아이돌 그룹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. 차트에서도 미국 내수에서는 잭슨 파이브에게 밀렸지만,[* 그래도 오스몬즈 역시 꽤 큰 히트를 하긴 했다. 잭슨 파이브한테 밀려서 그렇지, One Bad Apple은 1971년 빌보드 핫 100에서 1위 했으며 1971년 빌보드 연말차트 5위까지 올랐다. 이 그룹의 다른 히트곡은 당연히 잭슨 파이브에 밀리지만 Donny Osmond는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펼쳤다. 1971~1973년 사이에선 빌보드 차트에서 Donny Osmond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. 빌보드 1위도 한 두 곡 했었다.] 해외에서는 더 오스몬즈가 우위를 점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. 하지만 탈색된 짝퉁이라는 오명은 끝내 벗지 못했고, 경쟁 그룹의 마이클이 솔로에서 [[넘사벽]]급 위치를 점하는 바람에 아래 그래프에서조차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묻혀져 버렸다. 그와 별개로 더 오스몬즈의 리드 싱어이자 평소에 마이클과 친했던 '도니 오스몬드'는 지금도 예전보다 못할지언정 나름 괜찮은 음악, 방송 경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.] 1971년엔 [[Mama's Pearl]]과 [[Never Can Say Goodbye]]가 크게 히트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